인보험 특유의 ‘보험수익자’ 개념
생명보험, 상해보험, 질병보험 등 인보험에서는 특유의 개념으로 ‘보험수익자’가 있습니다. 보험수익자는 보험금을 지급받을 권리를 가지는 자를 말하는데, 인보험이 아닌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피보험이익을 가지는 ‘피보험자’가 보험금 청구권도 가지므로 보험수익자라는 개념을 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보험계약자’의 보험수익자 지정 • 변경권
보험수익자 지정 또는 변경은 기본적으로 보험계약자의 권리입니다(상법 제733조 제1항).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때 ‘상속인’의 보험수익자 지정•변경권
그런데 보험계약자가 사망하여서 상속인이 보험계약을 승계한 때에도 승계인이 보험수익자를 변경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특히 상법 제733조 제2항 제1문(“보험계약자가 제1항의 지정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피보험자를 보험수익자로 하고 보험계약자가 제1항의 변경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다”)은 구체적으로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때에 보험수익자가 누구로 ‘확정’되는지 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조항 제2문(“그러나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 승계인이 제1항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약정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에서는 만약 보험계약자가 승계인이 보험수익자 지정 또는 변경할 수 있도록 별도로 약정할 수도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상법 제733조(보험수익자의 지정 또는 변경의 권리) ① 보험계약자는 보험수익자를 지정 또는 변경할 권리가 있다. ② 보험계약자가 제1항의 지정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피보험자를 보험수익자로 하고 보험계약자가 제1항의 변경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다. 그러나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 승계인이 제1항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약정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③ 보험수익자가 보험존속 중에 사망한 때에는 보험계약자는 다시 보험수익자를 지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 보험계약자가 지정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한다. ④ 보험계약자가 제2항과 제3항의 지정권을 행사하기 전에 보험사고가 생긴 경우에는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익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한다.
그렇다면 상법 제733조 제2항의 구조상,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때에 -보험계약자가 별도 특약으로 승계인에 의한 보험수익자 지정 또는 변경을 허용하는 약정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험계약자의 승계인(상속인)은 보험수익자를 지정•변경할 수 없다고 해석됩니다.
즉, 보험계약자의 승계인(상속인)은 보험계약자가 별도 특약으로 승계인에 의한 보험수익자 지정 또는 변경을 허용하는 약정을 한 경우에만 보험수익자를 지정•변경할 수 있으므로, 이미 지정된 보험수익자가 있으면 그 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되고, 만일 없다면 피보험자가 보험수익자로 ‘확정’되는 것입니다.
상법 제733조 제2항 제1문 해석
상법 제733조 제2항 제1문의 앞단(“보험계약자가 제1항의 지정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피보험자를 보험수익자로 하고”)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실무상 생명보험에서 보험수익자를 지정하지 않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보험수익자를 ‘법정상속인’으로 한 것도 지정한 것입니다),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한 바 없다면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때에 보험수익자는 피보험자로 확정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문제는 상법 제733조 제2항 제1문의 뒷단(“보험계약자가 제1항의 변경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다”)인데, 문언을 그대로 보자면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 변경권을 1회라도 행사하고 사망하였다면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되는 것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보험수익자 변경권은 성질상 그 행사 횟수에 제한이 없으므로1 변경권을 몇 번 행사하였는지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즉, 보험수익자를 지정 또는 변경하는 것은 모두 보험계약자이기 때문에,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한 후에 ‘보험계약자를 변경하지 않은 경우’, ‘1번 변경한 경우’, ‘여러 번 변경한 경우’를 비교해 보면 보험계약자의 최종적인 의사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각각 차이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상법 제733조 제2항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보험계약자의 의사로 보험수익자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에,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때에 그 상속인이 임의로 보험수익자를 지정•변경하지 않도록 마련된 규정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보험수익자 변경권이 행사되었는지 여부(혹은 몇 번 행사되었는지)를 요건으로 보험수익자 확정의 효과를 발생시킬 필요가 없는데도, 상법 제733조 제2항 제1문은 보험계약자가 보험수익자를 지정한 후 변경하지 않고 사망한 때에만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다고 정하고 있어서 어색합니다.2
그러면 적어도 상법 제733조 제2항 제1문이 보험계약자의 최종적 의사를 반영하여서 보험수익자를 확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규정된 것이라고 본다면, 조문을 문언 그대로 해석해서는 부족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래서, 문언과 다소 괴리가 있지만, 상법 제733조 제2항 제1문은 보험계약자가 사망하면서 특별히 보험수익자를 변경하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미 지정된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다는 의미로 해석함이 타당해 보입니다. 즉, 보험계약자가 사망하기 전에 최종적으로 지정 또는 변경한 보험수익자가 있다면 그 사람의 보험수익자 지위를 확정하여서 승계인이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상법 제733조 제2항은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특약으로 승계인에 의한 보험수익자 지정 또는 변경을 허락한 경우가 아니면, 마치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에 보험수익자의 지위가 확정되는 것과 유사하게, 보험계약자가 사망한 때에 지정 또는 변경된 보험수익자가 있으면 그 보험수익자의 지위가 확정되어서 승계인이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노트 – 보험계약 체결 시에는 승계인에 의한 보험수익자 지정•변경을 허용한다는 약정을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동일한 인보험의 경우는 보험계약이 승계되지 않을 것이므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경우에 보험계약자가 피보험자보다 먼저 사망한 때에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실무상으로는 부모가 자녀를 위한 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보험수익자를 부모로 하고 ‘승계인에 의한 보험수익자 지정•변경 특약’을 하지 않았는데 부모가 먼저 사망하면, 피보험자인 자녀는 다른 상속인들로부터 보험계약을 양수하는 방법으로 보험계약자 지위는 온전하게 승계할 수 있지만, 보험수익자는 이미 그 상속인들으로 확정되었고 승계인들이 보험수익자를 지정•변경할 수도 없으므로 피보험자가 보험수익자 지위를 넘겨받을 수 없게 되고, 결국 보험금을 청구할 때마다 상속인들이 공동으로 청구하여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확정된 보험수익자가 스스로 자기 권리를 피보험자에게 양도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실무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은 아닙니다.3 그리고 수익자가 여러 명인 때에 대표수익자를 지정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나, 이 또한 보험금을 청구할 때마다 대표수익자를 지정하도록 할 경우에는 -대표수익자 지정지 수익자들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므로- 상속인들이 공동으로 청구하는 경우와 결국 다르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자녀 등 타인를 위한 생명보험, 상해보험, 질병보험 등 인보험에 가입하려는 경우, 승계인에 의한 보험수익자 지정•변경권을 승계인이 행사할 수 있도록 약정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4
- 한기정, 보험법(2021) 참조함
- “보험계약자가 지정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피보험자를 보험수익자로 하고 지정권을 행사하고 사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다“라고만 정하였어도 충분해 보이는데, 구태여 “보험계약자가 지정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피보험자를 보험수익자로 하고 변경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사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다“고 정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 생명보험에서 보험수익자가 자신의 권리를 양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보험수익자의 권리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까지는 확정되지 않은 권리이므로 양도성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확정되지 않은 보험수익자의 권리를 양도할 수 있다고 하면, 보험계약자가 가지는 보험수익자를 지정•변경할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고, 보험수익자가 자신의 권리를 양도한 이후에 보험계약자가 다시 보험수익자를 변경한 때에는 법적 불안정성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나, 상법 제733조 제2항에 의해서 보험수익자의 권리가 확정된 경우라면 -보험계약자의 권리를 침해할 여지가 없으므로- 보험수익자의 권리는 양도성을 갖는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상법 제731조 제2항은 보험계약으로 인하여 생긴 권리(보험금청구권 등)를 양도할 수 있다는 전제로 규정되어 있는데, 보험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보험수익자가 확정적으로 취득하는 보험금청구권을 양도하는 데에 피보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상법 제731조 제2항은 보험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에 보험수익자가 보험금청구권을 양도하려는 때에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약정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남겨진 가족을 믿지 못하겠다면, 약정하지 않는 편이 현명할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