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보험에서는 이른바 ‘제3자’적 관계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배상책임보험에서 피해자, 가해자(피보험자), 보험회사는 제3자적 관계에 있고, 피해자는 가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지며, 가해자(피보험자)는 보험회사에 대하여 보험금청구권을 가진다. 그리고 상법 제724조 제2항에 근거하여서 피해자는 보험회사에게 손해배상금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이른바 “직접청구권”).
손해보험의 제3자적 법률관계
배상책임보험의 직접청구권
법률관계에서 청구권은 당사자들 사이의 문제이므로, 제3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엄격하게 제한된다. 그런데 상법 제724조는 특별히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 가해자를 건너 뛰고 보험회사에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비용손해보험의 제3자적 관계
비용손해보험은 피보험자가 보험약관상 정하여진 사유로 비용을 지출한 경우에 그 비용지출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이러한 비용손해보험도 배상책임보험에서와 유사한 제3자적 관계가 형성된다.*
* 또한 참고로, 배상책임보험에서도 피해자가 손해를 회복하기 위해서 비용을 지출한 경우에 해당 비용을 손해로서 보험회사에 직접청구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도 피해자의 손해 회복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한 자는 서비스 비용을 피해자에게만 청구할 수 있고 피해자의 보험회사에 대한 직접청구권을 자신이 행사할 수는 없다. 이 경우에도 비용손해보험에서와 같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다만 비용손해보험의 경우 배상책임보험과 달리 제3자를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배상책임보험에서의 직접청구권과 같은 제도가 없다.
따라서 비용손해보험에서 제3자의 지위에 있는 ‘서비스 제공자’는 피보험자에게 제공한 서비스의 대가인 비용을 청구함에 있어서 피보험자에게만 청구할 수 있으며 피보험자를 건너 뛰고 보험회사를 상대로 직접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 이 경우 민법상 채권자대위청구권을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으나, 채권자대위청구를 위한 보전의 필요성이 인정될지 여부는 사안에 따라서 판단이 필요하다.
비용손해보험에서 서비스 제공자가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을 양도받아 보험회사에 직접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 소송신탁이 문제됨
위와 같은 구조로 인하여, 비용손해보험에서 서비스 제공자가 피보험자로부터 서비스 비용을 지급받는 대신에 피보험자가 보험회사에 대하여 청구할 수 있는 보험금 청구권을 양도받아 보험회사를 상대로 직접 보험금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한지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피보험자는 당장에 비용을 지불할 자력(또는 의사)이 없더라도 보험에 가입하였음을 밝히고 서비스를 우선 제공받은 이후에 서비스 제공자에게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에 자신이 가진 보험금청구권을 양도해줌으로써 실제로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명이 복잡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일은 자동차보험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차량을 수리하면서 정비소에 “보험처리 해달라”고 하면, 정비소가 알아서 보험회사에 정비료를 청구하는 경우가 그렇다.*
*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차량손해 담보로 처리하는 경우만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용손해보험에서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 양도가 소송수행을 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소송신탁에 해당하여 무효인지 문제 검토
그런데 위와 같이 비용손해보험에서 피보험자의 보험금청구권을 채권양도하는 것이 소송수행을 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신탁법 제6조가 유추적용되어 무효인지 문제된다.*
* 구체적인 쟁점 및 하급심 판결 사례는 보험계약관계에서 채권양도와 소송신탁 최근 판례 경향(2024. 11. 14.) 참조
최근 하급심 판결 경향은 소송신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임
이에 대하여 구체적인 대법원 판결은 아직 확인되지 않지만, 하급심 법원은 대부분 소송신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즉, 피보험자가 자동차 정비료를 지급하는 대신에 자동차 정비소에 보험금청구권을 채권양도하고, 자동차 정비소가 보험회사를 상대로 직접 보험금 청구권을 행사하는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소송신탁에 해당하지 않고, 채권양도는 유효하다는 의미이다.*
* 대전지방법원 2024. 1. 31. 선고 2023나200800 판결 등
앞서 든 증거에 을1, 2호증과 변론 전체의 취지를 더하여 인정할 수 있는 다음 사정, ① 원고는 이 사건 차량의 소유자 C의 의뢰로 이 사건 차량을 수리하고, C은 원고의 수리 완료 후 원고에게 수리비에 관한 손해배상채권을 양도하고 이 사건 차량을 인수한 점, ② E는 손해배상청구권을 양수한 원고에게 일부 수리비를 지급하면서 손해배상청구권의 양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하였고, 보험회사가 정비업자에게 차량수리비를 직접 지급하는 것이 이례적이지 않은 점, ③ 원고는 피고와 자동차보험계약을 체결한 E로부터 정비요금의 산정에 관한 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하는 F 주식회사(이하 ‘F’이라 한다)와 정비요금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위 계약에서 정한 공임을 기준으로 산정한 정비요금을 E로부터 받아온 점 등 채권의 양도 경위, 보험금의 지급 경위, 양도계약 체결 시점과 이 사건 소 제기 사이의 시간적 간격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차량의 차주의 채권양도는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라고 볼 수 없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대전지방법원 2024. 1. 31. 선고 2023나200800 판결
채권양도가 소송신탁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본 판결도 있음
반면에 최근 전주지방법원에서는 위와 같은 구조에서 채권양도가 소송신탁에 해당하여 무효라고 본 사례가 있다.*
전주지방법원의 판단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임의비급여 진료비 반환청구권을 양도받은 보험회사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진료비 반환청구를 한 사안에서 보험회사가 채권양도를 받은 것이 소송행위를 하게 하기 위한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서 무효라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 2. 23. 선고 2021다304045 판결)과 사실상 같은 구조라는 점이다.
* 전주지방법원 2024. 10. 16. 선고 2023가합11131 판결
임의비급여 진료비 반환청구권을 양도받은 보험회사의 소송에서 소송신탁 여부가 문제된 사안 검토
보험계약관계에서 채권양도와 소송신탁 최근 판례 경향(2024. 11. 14.)에서 살펴본 대법원 2023. 2. 23. 선고 2021다304045 판결의 사안이다.
피보험자가 의료기관에서 임의비급여 진료를 받고 진료비를 지급한 이후에 실손의료비보험으로 보상받았다면, 임의비급여는 국민건강보험법에 위반되어서 해당 진료계약은 무효이므로 피보험자는 의료기관을 상대로 자신이 이미 지급한 진료비를 반환청구할 수 있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가지고, 보험회사는 무효인 진료계약을 근거로 지급한 실손의료비 보험금을 피보험자에게 반환청구할 수 있게 된다.
위 경우에 피보험자가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반환하는 대신에 의료기관에 대하여 행사할 수 있는 진료비 반환청구권(부당이득반환청구권)을 보험회사에 채권양도하고, 보험회사는 의료기관을 상대로 진료비 반환청구권을 직접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 대법원은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위와 같은 채권양도는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신탁법 제6조가 유추적용되어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 구체적인 쟁점 및 사례는 보험계약관계에서 채권양도와 소송신탁 최근 판례 경향(2024. 11. 14.) 참조
[노트] 같은 구조에 대해서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적어도 자동차 정비소가 차주(피보험자 또는 피해자)의 보험금청구권(또는 직접청구권)을 채권양도받아 보험회사에 직접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도 해당 채권양도는 소송행위를 하게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여서 무효라고 판단함이 타당하다.
하지만 보험회사가 소송을 제기한 경우에는 무효로, 소송을 당한 경우에는 유효로 판단되는 것이 현재의 하급심 판례의 경향이다.
소송신탁 법리 자체가 모호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옳은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같은 구조에 대해서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고, 일관된 판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