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사망보험금 사건에서 보험금 지급사유의 요건 중 ‘사고의 우연성’에 ‘피보험자의 고의’ 개념이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한 판결을 소개합니다. ‘피보험자의 고의’는 면책사유이기도 하기 때문에 입증책임 분배의 문제가 생깁니다. 피보험자는 공황장애, 췌장암 등 육체적, 정신적 투병생활에 지친 피보험자가 신세를 비관하다가, 병원 계단실 지하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쟁점 – 병원 지하주차장 비상 계단실 추락한 채 발견, 고의로 자살한 것인지 다툼
(1) 농협생명 재해사망 보험 가입, 오랜 기간 공황장애 투병, 췌장암 의심돼 입원
① 농협생명 보험가입
피보험자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농협생명보험과 사이에 총 3개 보험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② 공황장애, 불안장애로 오랜 기간 약물 복용
피보험자는 2014년경부터 공황장해, 불안장애 등으로 약을 복용하여 왔고,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해오면서 배우자에게 “죽고 싶다”거나 “이렇게 해서 어떻게 사냐”와 같이 자신의 병세를 비관하는 말을 여러 차례 하였습니다.
③ 췌장암 의심돼 입원
피보험자는 2020년 5월경에는 ‘췌장의 악성 신생물’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2020년 6월경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2020년 6월 23일에는 췌장암 진단을 위한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④ 바람 쐬고 오겠다며 외출했다가 계단실에서 사망
2020년 6월 23일 오후 10시 40분경, 피보험자는 속이 울렁거리는 증상이 있다면서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섰습니다. 담음날 새벽인 2020년 6월 24일 02시 50분경, 피보험자는 병원 지하주차장 비상계단 지하 5층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⑤ 경찰 조사: 신병을 비관한 자살로 결론
피보험자는 사고로 사망하기 전에 약 2년 동안 투병생활을 이어오면서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하였고, 그때마다 배우자에게 “죽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습니다.
유가족은 경찰 조사에서 “투병생활이 길었다”고 답하였고, 피보험자의 사망에 의구심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플 때마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많아서 의구심은 없다”고 답변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피보험자가 ‘육체적, 정신적 지병을 앓던 중 투신하여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하여 내사종결하였습니다.
(2) 유가족, “구토하려다 실수로 추락하여 사망한 것”
피보험자가 사망한 것이 ‘우연한 사고’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피보험자의 고의’로 인한 것인지 다툼이 됐습니다.
유가족은 ‘속이 울렁거린다’며 나갔던 피보험자가 구토를 하려고 지하주차장 계단실에 들어갔다가 난간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상해사고에 의한 사망이므로 보험금 지급사유가 된다는 취지입니다.
(3) 농협생명, “신병을 비관하여 투신하여 사망한 것”
농협생명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살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오랜 기간 투병생활로 지쳐있던 피보험자가 병세를 비관하여 투신하였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결국 상해사망보험의 보험금 지급사유의 요건인 ‘우연한 사고’에 해당하는지 혹은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사고인지 입증을 다투는 사안이었습니다.
판결 – 객관적 정황상 고의사고 명확하지 않다면 ‘사고의 우연성’ 증명 다한 것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6민사부1는 보험사고의 요건인 ‘사고의 우연성’ 개념과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고의’를 조화롭게 해석해야 한다고 하면서, 객관적 정황상 고의에 의한 사고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일응 ‘사고의 우연성’에 관한 증명을 다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농협생명이 피보험자가 고의로 투신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였으므로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2 구체적인 판결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사고의 외형상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고, 객관적 정황상 고의에 의한 사고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일응 ‘사고의 우연성’에 관한 증명이 된 것
재판부는 사고가 피보험자의 과실이나 제3자의 책임 등 예측할 수 없는 원인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객관적으로 밝혀진 정황이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결과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일단은 보험금 청구자가 ‘우연한 사고’를 증명했다고 봐야한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피보험자가 구토 증세로 지하주차장 계단실에서 난간에 기대었다가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고, 객관적으로 피보험자가 자살하였다는 물증이 없으므로, 일단 ‘사고의 우연성’ 입증 되었다고 본 것입니다.
(2) 농협생명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살한 것을 입증하지 못하였으므로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편 농협생명은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고의’를 입증할 책임이 있습니다. 적어도 일반인의 상식에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만큼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농협생명은 피보험자가 오랜 투병생활로 고통받아 왔고, 신변을 비관하면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해왔고 유가족도 이런 사실을 경찰 조사에서 인정한 점, 사고 당일 피보험자가 휴대전화를 꺼놓았던 사실 등을 주장했습니다. 게다가 치명률이 높은 췌장암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어서 병세를 비관하고 자살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주어진 증거들만으로는 자살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사고의 목격자나 유서와 같은 객관적인 물증이 없으며, 유가족이 경찰 조사에서 피보험자가 투신했다고 답변한 것은 피보험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조사된 것이므로 자살의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농협생명보험은 유가족에게 사망보험금 약 2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됐습니다.
노트 – 상해사고의 요건인 ‘사고의 우연성’과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고의’의 조화로운 해석
(1) 기존 대법원 판례 법리와 다른 점
기존 대법원 판결에서는 보험회사가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한 자살을 입증하여야 한다고 봤으나, 이번 판결에서는 ‘피보험자의 고의’가 보험사고의 요건인 ‘사고의 우연성’에도 포함되는 개념이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대법원 2001. 1. 30. 선고 2000다12495 판결
보험계약의 보통보험약관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보험자가 보험금 지급책임을 면하기 위하여는 위 면책사유에 해당하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있는바, 이 경우 자살의 의사를 밝힌 유서 등 객관적인 물증의 존재나,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만큼 명백한 주위 정황사실을 입증하여야 한다.
(2) 보험사고의 요건인 ‘사고의 우연성’과 면책사유인 ‘피보험자의 고의’를 조화롭게 해석해야
이번 판결에서는 ‘보험사고의 요건’과 ‘면책사유’에 모두 ‘피보험자의 고의’라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를 서로 조화롭게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판결 이유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보험사고의 요건인 ‘우연한 사고’는 ‘피보험자가 예측할 수 없는 원인에 의하여 발생한 사고로서 고의에 의한 것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보험금 면책사유로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보험사고의 요건인 ‘우연한 사고’ 개념에 포함된 ‘피보험자의 고의’를 오로지 보험금 청구자가 입증하여야 한다고 보면, 보험회사가 증명해야 하는 면책사유에도 ‘피보험자의 고의’가 있으므로 서로 모순됩니다.
(3) 결과적으로 보험회사가 ‘고의 자살’ 입증해야
재판부는 이런 모순을 지적하면서, 피보험자의 고의에 대한 입증책임을 보험금 청구자와 보험회사가 나누어서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목격자나 CCTV, 유서 등 객관적 물증이 없는 경우 결국 보험회사가 피보험자의 자살에 대한 물증을 제시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결과적으로 기존 대법원 판례 법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